이탈리아 어딘가의 편의점, 슈퍼마켓, 자판기 앞에서…
어떤 목이 마른 여행자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돌립니다.
“어? 왜 안 떨어지지?”
한 번 더 돌립니다.
두 번 더 돌립니다.
잡아당기고, 비틀고, 플라스틱이 끊어질 때까지 돌립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이 상황을 겪으신 분, 솔직히 손 들어보세요 ㅋㅋㅋ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밀라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나라는 왜 생수 뚜껑도 제대로 못 만드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완전히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생수 뚜껑이 붙어있는 건 EU법 때문입니다
2024년 7월 3일부터 EU 전역에서 새로운 규정이 시행됐습니다.
EU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ingle-Use Plastics Directive, 2019/904) – 이름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3리터 이하 음료 용기의 뚜껑은 병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왜냐고요? 플라스틱 병뚜껑은 크기가 작아서 버려졌을 때 해양으로 흘러들어가기 쉽고, 해양 쓰레기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품목이었거든요. 실제로 모래사장으로 밀려온 쓰레기 더미에서 플라스택 펫트병 뚜껑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뚜껑을 병에 붙들어 두면 함께 수거되고 함께 재활용됩니다.
이건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EU 전체가 같은 규정을 따릅니다.
TIP : 이탈리아어로 이 뚜껑은 “tappo agganciato”(따뽀 아간취아또)라고 합니다. ‘고정된 뚜껑’이라는 뜻이죠. 현지인들은 이미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마시냐고요?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뚜껑을 돌려서 열면 (분리는 안 되지만) 아래 사진처럼 옆으로 젖혀집니다. 그리고 경첩처럼 뒤집어지면서 병목에 붙어있는 채로 입구가 열립니다. 그 상태로 마시면 됩니다.
처음엔 약간 코에 뚜껑이 닿는 느낌이 있는데, 금방 익숙해집니다. 현지 이탈리아 사람들 보면 완전히 자연스럽게 마시더라고요. 저도 이제는 한국 가서 뚜껑이 탁 떨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ㅋㅋㅋ

이탈리아 대표 생수 브랜드들도 모두 동일합니다
레비시마(Levissima), 산 베네데토(San Benedetto), 프리울리(Friuli), 아쿠아 파나(Acqua Panna),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어떤 브랜드를 사도 전부 뚜껑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브랜드 문제가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사실상 EU 전체)의 표준이니까요.
슈퍼마켓(수뻬르메르까또, Supermercato)에서 1.5L짜리 대용량 생수를 사도, 카페 앞 자판기에서 0.5L짜리를 뽑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량품인가?” 싶어서 교환 요청하러 가시는 분도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교환해도 똑같습니다 😂
여행 중 알아두면 좋은 이탈리아 생수 상식
- naturale(나뚜r랄레) = 탄산 없는 일반 생수
- frizzante(f프r리잔떼) = 탄산수 (강탄산)
- leggermente frizzante(레제r르멘떼 f프r리짠떼) = 약탄산수
- 이탈리아 식당에서 “acqua(악꾸아)?”라고 물으면 탄산/무탄산 선택을 요청하는 겁니다.
탄산이 싫으면 “naturale, per favore(나뚜r랄레, 뻬r르 f파v보r레)”라고 하세요. - 수돗물(acqua del rubinetto, 악꾸아 델 r루비넷또)은 대부분 지역에서 마셔도 됩니다. 밀라노 수돗물은 알프스 발원이라 품질이 좋습니다. (물갈이 하시는 분들은 안전하게 생수를 사서 드세요)
마무리
뚜껑이 안 떨어진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이탈리아가 고장난 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위해 한 발 앞서가고 있는 겁니다.
여행 중 작은 차이 하나가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알고 나면 “아, 이래서구나” 싶은 순간이 이탈리아엔 참 많습니다.
그 순간들을 italpick이 하나씩 찾아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댓글로 또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