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고령화 문제

9월 27일자 신문에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91세 아버지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57세 아들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원문기사는 글 하단에 링크해 두었습니다)

91세 아버지와 아들의 퇴거 위기

아버지는 평생을 일하며 성실하게 가정을 지켜왔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아들을 돌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에게도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91세의 아버지는 노쇠한 몸으로 아들의 약을 챙기고 발작이 찾아올 때 곁에서 지켜주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을 살아온 집에서 퇴거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집을 구하려 했지만, 집주인들은 고령의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아들을 세입자로 맞는 것을 꺼렸습니다.
나이와 병이 이 가족에게 또 다른 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령과 질병이 만든 이중의 벽

아버지는 아침마다 아들을 챙기고 약을 먹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의료 기록과 서류를 꼼꼼히 정리하면서도, 자신이 언제까지 아들을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아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Non so fino a quando riuscirò a proteggere mio figlio.
Ma qualcuno deve garantirgli un futuro sicuro.”

이 말은 노인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와 닮아 있는 현실

이 기사를 보면서 대한민국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시대,
노인 부양과 주거와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히 부모가 고령이 된 상태에서 성인 자녀를 돌봐야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장애나 만성질환을 가진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경우에 경제적 부담과 돌봄의 책임은 고스란히 고령의 부모에게 전가됩니다.
한국 역시 이탈리아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이탈리아의 91세 노인이 남긴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언제까지 아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Non so fino a quando riuscirò a proteggere mio figlio.”

과연 우리는 우리 사회의 주세페와 니콜라 같은 이들을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을까요?

고령자와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주거, 사회적 돌봄 체계, 그리고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없다면 앞으로 더 많은 가정이 같은 절망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가장 연약한 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이 기사는 결국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원문기사 : 91세 아버지와 아들의 퇴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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